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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썼던 글들

기본적 분석가와 기술적 분석가

by 별나 202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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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앙에 댓글로 쓰다가 너무 많은 내용을 써서,

여기에 잠시 옮겨둔다.

 

*

 

저 역시 차티스트의 방식을 옮겨 매매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보니, 기술적 분석 자체가 무용하다는 입장에 무작정 동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차트는 때로 후행적 지표이고, 때로는 시세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차트 = 지나간 과거라 간주한다면, 차트는 한 편으로는 특정 종목이 가진 역사라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역사가 때로 반복되듯, 시세 역시 때로 반복될 수 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기술적 매매자들에게 흔히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3가지는 시세 (가격), 매매자들의 거래의향 (수급), 지난 매매자들의 거래 기록 (매물)일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대표적으로 '거래자들의 의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이평선, MACD, RSI 같은 보조지표들은 이것들을 보다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툴이라고 생각하며, 한 번의 해석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만큼 앞서 언급한 3가지 실제적인 지표와 괴리되거나 후행성이 증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적 매매자들은 시장에 참여하는 다양한 거래자들의 의향을 사고 파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한편 투자 관점에서 기업의 주식을 사고 파는 기본적 분석가들은 대중들이 인식하고 있는 기업의 일반적인 가치 (현 주가)와 자신이 올바르게 평가한 기업의 가치 (목표 주가)사이에 괴리가 있다면, 그 괴리를 투자의 아이디어로 삼아 차익을 발생시키는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보유자본이든, 훌륭한 CEO든, 성장하는 업종이든). 이를테면 버핏은 그가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하기 전, 단순 투자 목적으로 망해가던 버크셔 해서웨이에 '빨다 남은 담배꽁초' 만큼의 가치를 발견하고 매수하기 시작했었지요.

그러므로 제가 이해하는 기본적 분석가들은 '시장의 비효율성'이 장기적으로는 바로잡아질 것이라고 믿는 이들로, '효율적인 가격'에 도달할 때까지 보유하거나 '지속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즐깁니다. 때문에 기본적 분석가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기업의 펀더멘탈이나 모멘텀을 잘못 분석하거나 오인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기술적 분석가들 역시 이 공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시장이 특정 시점에서 단기적으로 비효율적이지 않다면, 트레이딩도 인베스팅도 성립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기술적 분석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장이 가지고 있는 또다른 기능인 수요와 공급의 관점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를테면 어제의 원유 1갤런과 오늘의 원유 1갤런은 다르지 않은 원자재이지만, 이 원자재를 둘러싼 업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합니다. 어제의 원유 1갤런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면 가치는 0에 수렴하겠지만, 오늘의 원유 1갤런을 구매하고자 하는 거래자가 3명이라면 가격은 분명히 상승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트레이딩은 수요자 (매수의향 거래자)와 공급자 (매도의향 거래자)의 구도를 파악하고, 수요가 창출한 초과 가격의 괴리분만큼을 매매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기술적 분석가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수요와 공급의 의향을 잘못 분석하는 것'이 됩니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 중언부언이 좀 생겼네요. 속담에 '꿩을 잡는 것이 매'라 했듯, 시장에 순응하거나 편승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 분석가들 중에서 몇몇 분들은 기술적 분석가들이 버블을 과도하게 키우거나, 가치를 과도하게 할인한다는 이유로 미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속성에 대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트레이딩의 속성이고, 시장이 가지는 '비효율성'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덕분에 어느 뛰어난 기본적 분석가는 패닉셀로 '과도하게 할인된' 주가에 투자하는 기회를 획득할 수 있겠지요.

버핏옹의 이야기처럼, 시장과 산업은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변모하므로, 자본 대비 창출가능한 부가가치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우상향합니다. 하지만 시세를 추종하는 단기 등락을 추구하는 매매자들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우상향은 더욱 더딜 수 밖에 없겠지요. 변명은 아니지만, 때로 누군가는 버블을 맛보고 누군가는 버블을 키우며 누군가는 버블에 당하는 것이 시장이 가진 자연스러운 모습의 일부이라 생각해봅니다.